로제트에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로제트 학원은 여름만큼 가을도 눈부시답니다.
아름드리 느릅나무가 학원을 둘러싸고 있어 무척 아늑한 느낌입니다.
집 근처에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커온 느릅나무가 있어서, 처음 학원에 왔을 때 이 아늑한 느낌이 많은 위안이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느릅나무들을 아주 좋아해요
.
다른 단풍나무도 아주 많아서, 본격적인 단풍의 계절이 오면 모두들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느라 휴식시간의 대부분을 산책로 근처에서 보냅니다.
오늘도 제법 선선해진 오후 햇빛을 받으며 한가롭게 느릅나무 잎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알록달록한 단풍들 너머에서 한 소녀가 갑자기 나타났어요.
붉은 빛에 금색 자수가 놓인 독특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꼭 단풍나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어요. 아주 이국적인 얼굴을 한 소녀였는데, 억양은 조금 어색해도, 꽤 능숙한 영어로 제게 말을 걸었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은 사쿠라로 일본에서 왔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드는 쿠튀리에가 되는 것이 꿈이어서, 이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왔다고 했어요.
로제트의 첫 번째 유학생이 온거에요!
모두, 그녀를 소개받고 싶어 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온 소녀.
밤의 눈동자와 머리칼을 가진 동양의 손님. 놀랄 만큼 양장이 잘 어울리는 예술가인 그녀에게 모두 관심을 가졌습니다.
마가렛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미술시간에 천에 직접 그림을 그려 염색하는 일본의 전통 염색기법을 선보여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던 모양이에요.
저도 그녀가 천에 그린 그림이 보고 싶었습니다.
아주 명랑한 성격의 사쿠라와 우리는 수업 한 시간을 같이 듣고는 벌써 친해져서 함께 그녀의 방에 들르기로 했답니다.
사쿠라의 방에는 신기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그녀가 아주 아끼는 수집품인 '네츠케'라는 작고 정교한 공예품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작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는 사쿠라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네츠케를 하나 둘 모으게 되었다고 해요.
그녀가 가장 아끼는 것은 집에 두고 온 애견 '시로'를 닮은 잠자는 강아지 모양의 네츠케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였어요.)
그녀가 그려둔 여러 가지 의상의 스케치들도 보았는데, 아름답고 전통적인 드레스를 만들고 있었어요.
입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아주 혁신적인 디자인의 옷들도 몇 가지 그려져 있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신기한 디자인이었지만 어쩌면 50년이나 100쯤 후에는 대 유행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그녀는 졸업 전까지 우리 모두에게 멋지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한 벌씩 만들어 내겠다고 장담했답니다. 우리는 그녀의 에너지에 반했어요.
벌써부터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쿠라와 함께하는 로제트에서의 생활이 더욱 기대됩니다.